2권(상·하) 1책(72장). 필사본. 작품 말미에 “歲崇禎紀元後四庚子三月下澣 南湖居士記(세 숭정기원후사경자삼월하한 남호거사기)”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1840년 남호거사(南湖居士) 김제성이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유일본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있다.
표지에 한문으로 ‘王會傳(왕회전)’이 적혀 있고, 그 다음 장에 ‘왕회전상(上) 목록(目錄)’이라고 하여 제7회까지의 회장체 제목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왕회전 상’ ‘남호몽록(南湖夢錄)’이라고적혀 있다. 하권도 같은 체제이다. 그리고 작품 말미에 “丙午 三月 初二日 冊主 李主政宅 畢書(병오 삼월 초이일 책주 이주정댁필서)”라는 필사기가 있다.
이 작품은 당시에 유행하였던 「금화사몽유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완성된 작품으로서, 전체 분량의 1/4 정도까지는 「금화사몽유록」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왕회전」은 「금화사몽유록」의 결말 부분인 원태조의 침입부터는 새로운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이후의 내용만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원태조가 자기를 부르지 않자 군사를 일으켜 침범하였다가 제갈량에게 사로잡힌다. 송고종이 자신의원수라며 악비를 시켜 죽이라 하니, 한고조가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아 사람들에게 보이고 경계문을써서 사방에 반포하게 한다.
송주(宋主) 유유(劉裕)는 스스로 창업지군(創業之君)으로생각하고 부르기를 기다렸는데 초청하지 않자, 여러 제후와 합종하여 쳐들어온다. 이를 막으러 간 항왕은 유목지에게 꼬임을 당하여 배반하였다가 공명의 계략에 빠져 예주에서 대패한다. 다시 서주에서 싸움을 일으키다가 공명의 계교로 사로 잡히자 스스로 목을 찔러 죽는다.
한편, 100만 정병을 거느리고 송주를 치러 갔다가 장홍책의 꼬임을 당하여 다른 마음을 품었던한신은, 제갈량의 계략에 의하여 사로 잡혔다가 풀려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서달이 도원수가 되어 마침내 송주를 사로잡고, 진왕에봉해진다.
한고조가 제왕들의 힘으로 청나라를 물리치자고 하자, 명태조는 하늘의 뜻을 거슬릴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조선이 청에게 항복한 것을 ‘배은망덕’이라고 하자, 효종과 송시열의 북벌론 등을 들며 때가 맞지 않고 힘이없어서 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한고조가 악사에게 명하여 파연지곡(罷宴之曲)을 연주하게하며 다시 술잔을 들어 오랜 세월 동안의 근심을 씻어 버리자고 한다. 이때 연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슬퍼하며 이별하는데, 문득 음풍이 불고 비가 내리더니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다.
「왕회전」은 ‘숭정 기묘년간(崇禎 己卯年間)’에 한 서생이 금화사에 투숙하였다가 한 꿈을 얻었다.’고 함으로써,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금화사몽유록」의 창작 시기가 ‘숭정 기묘년’, 즉 1639년(인조 17)임을 밝히고 있다.
「왕회전」은 배경을 낙양의 한 궁궐로 바꾸고, 입몽 각몽을 없애며, 제갈량을 작품의 중심 인물로 설정하고 군담(軍談)을 확대함으로써, 방관자형의 몽유록인 「금화사몽유록」을 주인공 중심의소설로 바꾸어 놓은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청나라에 대한 인식이다. 작가는숭명의식(崇明意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개국이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명나라 태조의 입을 빌어서 분명히 밝힘으로써, 청나라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청이 지배하는 현실을 하늘의뜻으로 인정하고, 뒤에서는 숭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은 당시의 대세론, 현실론을 반영한 것이다.